언론과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권력과 불가근불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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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권력과 불가근불가원
  • 박주현 기자 / 전북의소리
  • 승인 2023.12.12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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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시론

요즘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란 말이 자주 회자된다. 세상이 각박하고 어지러울수록 더 자주 쓰이는 이 말은 중국 춘추전국시대에서 비롯된 사자성어지만 ‘너무 가깝지도 않게, 너무 멀지도 않게 하라’는 중용(中庸)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어서 현재까지도 여전히 함의하는 바가 크다. ‘불가근불가원’은 ‘고슴도치 딜레마(Hedgehog Dilemma)’와도 유사한 뜻을 지녔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우화 가운데 등장하는 ‘고슴도치 딜레마’는 고슴도치들이 추위를 느끼고 서로 가까이 다가가지만 이내 서로의 가시에 찔려 아픔을 피하려 다시 떨어지고 마는 데서 비롯한 딜레마로, 추위와 아픔 사이에서 적절한 거리 유지가 필요하다는 의미를 지닌 말이다.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으면서 행복해지려면 ‘적절한 거리’ 유지 중요

결국 ‘불가근불가원’과 ‘고슴도치 딜레마’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절묘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행복해진다는 의미를 공통적으로 지녔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관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를 사는 우리 사회에서도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권력과 시민 사이에서 견제와 감시 역할을 하는 언론과 시민사회단체가 그러한 적절한 관계, 즉 불가근불가원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서 권력과 언론, 권력과 시민사회 간의 ‘적절한 거리’를 찾을 수 있는데 이 '적절한 관계'가 유지되지 않을 경우 어느 한쪽으로 힘이 쏠리게 돼 균형을 잃고 말아 결국은 민주, 평화, 평등, 행복이 멀어지는 경우를 우리는 수없이 경험해 왔고 지금도 경험하고 있다. 적절한 관계를 유지해야 할 언론과 권력, 시민사회단체와 권력의 관계가 우호적인 관계 또는 밀월의 관계로 이어질 경우 야기되는 독재와 비민주, 그로 인한 사회적 혼란과 피해는 오롯이 시민들 몫이 된다. 

그래서 종교철학자인 마르틴 부버(Martin Buber)는 ‘나와 너’ 라는 책에서 ‘인간관계의 근원적인 나와 너의 관계에서 ‘나’라는 말은 독립적으로 쓰이는 단어가 아니고 본래 ‘너’라는 단어가 있다는 조건에서 인간관계의 구분을 위해 쓰는 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저자는 특히 기울어진 현실보다 수평적인 현실 속에서 너와 나 모두가 편안함을 느끼면서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여운처럼 남기고 있다.


이것은 불가근불가원과 고슴도치 딜레마가 던져주는 메시지처럼 ’적절한 관계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대한민국 사회에서 견제와 균형의 중심에 서야 할 언론과 시민사회단체는 과연 정치와 자본 등 모든 권력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고 있을까?

언론과 권력과의 음습한 통로...비판·감시 역할 전환 ’위험‘

언론과 시민사회단체에서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던 사람들이 정권이 바뀌면 권력의 하수인으로 신분을 전환하거나 지방선거가 끝나면 지방 정가로 이동해 홍보의 전위부대에 섬으로써 공수 역할이 뒤바뀌는 사례를 우리는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공정과 독립을 생명으로 하는 공영방송의 사장이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최고 권력의 힘에 의해 낙하산으로 내려 앉는 경우를 쉽게 목격했고 지금도 목격하고 있다. 

흥미로운 건 전·현직 법조 출입기자들의 모임 회장 출신들이 윤석열 정부 들어서면서 공영방송인 KBS 사장은 물론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에 발탁되거나 정부 요직의 후보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법조 담당 기자들이 현직 검찰 및 법원 간부들과 비공식적인 관계 유지를 통해 구축한 '권력과의 음습한 통로'로 보는 시각이 높다. 뿐만 아니라 '이권 카르텔'이 될 위험성이 매우 크다고 보는 시각이 언론계 내부에서 조차 파다하다. 

언론과 권력의 불가근불가원 관계를 무색하게 하는 것은 비단 중앙에서 뿐만 아니라 지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전북지역에서도 최근 도지사 스피커 역할을 하는 전라북도 대변인 자리에 지사와의 오랜 인연을 강조하는 언론계 중견 기자가 최근 임명돼 논란이다.

전북지역 언론, 지방권력과 긴장·중립성 훼손 우려 큰 이유는?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지역 본부장 출신으로 특히 전북기자협회장을 역임한 경력이 논란의 핵심이다. 전북도는 언론과의 소통과 가교역할을 강조했지만 언론인들 내부에서도 지방권력에 대한 적절한 긴장과 중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북도 외에도 각 시군 및 의회의 홍보와 공보라인에 언론인 출신들이 즐비하다. 견제와 균형의 중심에 섰던 언론사 기자들이 이를 방어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공수가 전환된 사례는 심심치 않게 보아왔다. 그런가 하면 전북지역 일부 일간지들 중에는 ’리더스 아카데미‘와 ‘비전창조 아카데미’ 등은 운영하면서 지역의 정치권과 주요 행정기관, 기업, 단체 등의 대표 또는 핵심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회비를 받고 1년 과정을 운영한다. 

신문사 재정과 네트워크 활용에 도움은 되겠지만 대부분 지역사회에서 소위 잘나가는 층들로 구성된 ‘원우회’라는 또 다른 '이너 써클(inner circle)'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토호를 양성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역시 언론과 권력의 불가근불가원 관계를 무색하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전북 언론의 맏형격인 전북일보는 ‘리더스 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매년 기업 경영자 및 임원, 국회의원, 정부 기관장 및 고위 관료, 법조·의료·교육·문화·예술·체육 등의 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100명 내의 인원을 모집해 확장해 나가고 있다. 

전북지역 일간지들 중 두 번째로 오랜 창간 역사를 지닌 전북도민일보도 ‘비전창조 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역시 매년 CEO, 공직자, 공공기관장, 사회단체장, 미래의 주역이 될 중견 간부 등 100명 내의 인원을 모집하고 있다. 그러나 친목과 화합을 다지는 문화탐방, 워크숍, 골프대회 등 잦은 행사가 프로그램 기간에 포함돼 있어 학원인지 학교인지 친목 단체인지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들 중에는 지방선거에 출마해 자치단체장 또는 지방의원에 당선하는 사례도 많다. 그럴 때만다 해당 언론사들은 당선 축하연 등을 통해 자사 아카데미 출신 원우임을 은근히 과시하기도 한다. 감시와 견제의 대상이 우월적 또는 밀월 관계로 형성되며 그 영역이 점차 확대됐을 때 과연 언론이 제 기능인 감시와 비판 기능에 충실 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시민사회단체 ‘견제와 균형’ 기본 원칙 망각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은?


2022년 7월 5일 전북지역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대표들이 6·1 지방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선거 브로커' 개입 의혹 사건에 대해 경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며 관련자 및 업체들을 고발했다.
자본과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핵심인 시민사회단체들도 자본 또는 권력, 회원들의 눈치를 보느라 불가근불가원의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난 2020년 참여연대에서 20년 넘게 재벌 감시 활동을 하다 참여연대 관계자들을 강하게 비판하며 물러난 김경율 전 공동집행위원장은 당시 “참여연대는 권력 감시라는 시민단체 본연의 기능을 상실했다”며 “기본 원칙인 불가근불가원을 망각했기 때문”이라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혀 충격을 주었다.

전북지역에서는 지난해 6·1 지방선거 중 더불어민주당 전주시장 경선 과정에서 '선거 브로커 개입 사건'과 관련해 시민사회단체 전 대표와 민주당 당직자, 언론인 등이 기소돼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 충격을 주었다. 이 과정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직 전북환경운동연합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전북도당 당직자 출신 등 2명은 모두 1심과 항소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지역 일간지 전 기자(부국장)에게도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돼 지역을 떠들썩하게 했던 선거 브로커 사건이 마무리 됐지만 아쉬운 점은 여전히 많이 남았다. 정치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언론사 간부 기자와 시민단체 대표가 개입된 사건이란 점에서 더욱 충격과 불안을 안겨주었다.

특히 언론에 이어 시민사회단체까지 권력과 유착 관계를 보이며 브로커 역할을 하거나 지역 정치권력의 중심에 서려는 움직임에 많은 도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건강한 목소리를 내야 할 지역 언론과 시민사회단체가 개입된 부끄러운 사건이란 점에서 더욱 실망을 준 사례다.

토호권력-시민사회단체, 불가근불가원이어야 시민들 더욱 편하고 행복


무엇보다 시민사회단체가 권력과 자본의 편에 서거나 권력화되어 간다는 지적이 자주 나오고 있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전북의 대표격 시민사회단체인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가 재정 마련을 한다며 지난해 대형 공연행사를 통해 기금 마련을 한데 이어 올해는 대규모 주막 행사를 열어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최근 성대하게 연 ‘이틀 주막'에는 지역사회에서 내로라하는 정치인과 공무원, 기업체 대표 등이 얼굴을 내밀며 후원 행사에 참여했다. 권력을 견제·감시하는 시민사회단체 행사에 적절한 긴장 관계를 유지해야 할 대상의 기관·단체 관계자들이 후원을 위해 대거 참여한 것을 두고 이해충돌 논란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는 지적이 제기됐을 정도다. 

한편으로는 ‘지방정부와 지방의회의 부패·비리를 감시하는 지킴이, 지역경제와 민생을 살리고 골목상권을 보호하는 살림꾼, 시민의 몫과 권리를 지켜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 실천가’라는 지향 목표를 잃지 말고 제 역할을 더욱 충실히 해 달라는 요구일 수도 있다. 하지만 권력과 시민사회단체 관계는 견제와 균형이 핵심이란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 대학의 교수는 "어느 정도 서로를 알아야 감시와 비판도 가능하지만, 마치 한솥밥 먹는 식구처럼 친해지면 엄밀한 감시와 비판이 불가능해진다"고 지적했다. 이제 지역의 시민단체들도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할 때다. 그동안 토호권력과 너무 가까웠던 것은 아닌지. 토호권력과 시민사회단체의 관계가 불가근불가원이어야 시민들이 더욱 편하고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겠다. 

- 출처 : 전북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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